(경신판2) 드라마 황진이 (1) 내용전개가 일관성이 없다. 황진이와 백무의 대결구도를 '매향의 검무'를 통해 “종말론적 승부”로 몰고 가더니만, 이게 뭔가? 부용의 계략으로 판이 깨졌다. ‘화투놀음’에서 ‘파토’가 난 것이다. 이건 승부가 난 것이 아니다. 승부가 성립되지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0시로 돌려놓을 거라면, 왜 그런 법석을 떨면서 ‘검무의 승부 스토리’를 무리하게 짜 넣었는가? 시간의 낭비이다. 내 입장에서 볼 때, 한가지 소득을 건졌다고 한다면, 황진이가 검무를 소화해내어 춤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고, 춤을 위한 “하드웨어”를 구축하게 되었다는 것 뿐이다. 분명히 황진이는 검무를 확실하게 몸에 익히고 있었고, 검무를 끝까지 다 출 수 있는 상태였다. 다만, 부용의 계략으로 그 춤을 다 보여주지 못했을 뿐이다. 부연하자면, 이것은 승부가 성립하지 않은 것이지,. 승자-패자가 갈린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작가는 승부가 난 걸로, 승패가 갈린 걸로 극의 흐름을 몰아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좀 "찝찝하다"는 생각이 든다. (2) 작가는 너무 '달착지근한' 말만 동원하고 있다. 일단 '어감'이 좋은 말이나, 뜻은 잘 모르고 있으면서 그냥 막연하게 멋있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말을 마구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막연하게 좋을 것 같은 말이나 달착지근한 말은, 초등학생이나 감수성 높은 사춘기의 학생들에게는 통할 수 있으나, 인생을 어느 정도 경험한(특히 인생의 쓴 맛을...) 40-50대 시청자들에게는 “유치하다”는 생각마져 불러 일으키게 할 수 있다.. 닽착지근한 말 보다는 그냥 사실적인 말을 구사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이 ‘황진이’의 작가가 지나치게 ‘말의 유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적하는 것이다. 또한 작가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낱말들은, 그 낱말들끼리 어떤 연결성도 갖지 못하고 따로 따로 놀고 있다. 말과 말이 연결되어서, 극의 맥락이 위화감 없이 스무즈하게 흘러가야 한다. 드라마 ‘황진이’에서는 말들이 그냥 독자적으로 공중에 붕 붕 떠서 고립되어 있는 인상이다. 이러니 '복선'구도가 있을 리도 없다. 한가지 초등학생 개동이의 예화를 하나 소개해 드린다. 이 개동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명복을 빈다”는 말이 무척 맘에 들었다. ‘명복’이라는 말이 왜 이리 좋게만 들리는가? 이 개동이는 이 말에 막연한 동경을 품게 되고, 언제 한번 써먹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명절 때 동네 할아버지댁을 인사차 방문하여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그 할아버지가 노발대발한 것은 물론이다. 황진이의 작가도 이 개동이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감이 일단 좋게 들리는 말, 달착지근한 말은 거의 동원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눈에서 눈물 뺀다, 눈물 빼지 마라”라는 말은 他작품에서 某 작가가 처음 사용한 걸로 알고 있는데, 이걸 아무런 변형 없이 그대로 사용하다니, 창의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거늘, 이거 작가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군! (3) 작가는 올바른 이성을 갖고 있고,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갖고 있는가? 부용이 판을 깸으로써 ‘연회’는 난장판이 되고, 김정한과 송도 유슈 등은 이 사건을 취조하고 재판하고 있다. 김정한 대감, 아니 작가 양반, 도대체 그리도 머리가 안돌아가나? 황진이는 이 검무(군무)에서 실패하면 관가의 노비로 돌아간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황진이가 잘 안다. 군무를 성공시키는 열쇠는 동료들과의 호흡이다. 연회 전날 부용 등이 회합하여 (황진이도 불러놓고) 중요 장면의 춤사위를 바꾸자고 했으면, 또 그것을 교감행수인 매화가 승인했으면, 황진이는 그 것을 안 따를 리가 없는 것이다. 즉, 부용측의 제안을 안 받아들일 리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과 호흡을 맞추어야 군무가 살기 때문이다. 군무가 살아야 황진이도 관가노비가 되지 않고, 백무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부용이, “전날 밤 미팅에서 춤사위를 바꾸자고 황진이에게 제안했는데 진이가 저만의 춤울 추기 위해 이를 무시하고 거절했다”고 한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거짓말이다. 판관들은, 왜 이 정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부용의 “진실”만을 믿어주고, 황진이의 “오만함”만을 재판하는 것인가? 극이 전개되어온 정황으로 보아 부용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상황인데, 김정한은 판관 주제에 이 거짓말도 하나 간파하지 못한단 말인가? 어이고, 솔로몬 왕(의 지혜로운 재판)이 부럽다. 판관 김정한은, 당연히 부용의 거짓말을 추궁하여 실토(자백)를 받아내야 했다. 할 수 없군. 작가의 수준이 그 정도니…그런데 이 작가가 방송계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왔던 것인가? (4)황진이가 백무에게 품고 있는 적개심도 그 근거가 취약하다. 스승이라면 제자에 대해 엄하게 대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더구나 황진이가 수련을 끝내고 춤과 음률을 완성한 단계도 아니지 않나? 아직 배우고 공부하는 단계인데, 수련장의 규율대로 황진이를 훈련, 단련시키는 것이 뭐가 그리 잘못됐다는 말인가. 우리 가정의 부모들도 중3생이나 고3생을 둔 학부형이라면, 백무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 아닌가? 더구나 10년~15년을 입혀주고 가르쳐온 스승이었는데…… 물론 안다. 황진이가 그 만큼 ‘첫사랑’을 마음 아파했다는 것을… 그러나 그것은 지난번에도 한 번 언급했드시, 사회적 법도의 제약이 너무나 컸질 않았는가? 더구나 김은호는 ‘갈대의 순정’처럼 유약했고, 그후 등장하는 김정한도 폐쇄된 신분제 양반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꽃피는) 남녀간의 정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도망하려고 하질 않는가? 황진이가 숙성한 여인이 되려면, 우선 백무에 대한 ‘원한’을 거두어 들여야 할 것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프로바둑인 조훈현 9단은 일본의 도장에서 수련받을 때, 뭘 잘 모르고 ‘내기바둑’을 한번 뒀다. 그리 하여 도장에서 파문당한 일이 있다. 바둑을 도(道)로 여기며 올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정진하기를 바랬던 스승(세고에, 瀬越憲作)에게. ‘내기바둑’이란 도(道)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스승보다도 자상하고 깊은 자애심을 갖고 있었던 스승 세고에였기에, 결국은 조훈현을 세계제일로 키워냈지 않았는가? (5)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 문제. →극의 미시적 국면(局面)에서 본다면, 이 시가 읊어지는 장면이 크게 잘못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극의 흐름을 되돌아 보고 전후관계를 살피는 거시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도 이 장면을 끼워 넣는 시(時)계열상의 위치와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다. (6)젊은 배우들의 발음 부정확, 연기 불안정 문제. → 제작진이 극의 신선도를 높이기 위해 젊은 배우들과 '햇병아리급'들을 많이 기용한 것 같은데, 이는 극의 안정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이들은 특히 발음이 부정확했고, 불안정한 연기가 나아지질 않고 있다. 연출자는 시청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나올 때 까지 OK사인을 내면 안된다. 더구나 별 것도 아닌 대본을 가지고, 저작권 운운하면서 대본 공개도 안 하고 있질 않은가? 이렇게 시청자들에게 불친절하고도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 시청자가 바보가 된다. 극중에서 연륜있는 베테랑급 연기자들과 젊은 배우•햇병아리급들이 대면하는 연기 장면도 원가 어색하고 이질적이다. 아무리 극중이라고 해도 그렇다. 아무리 한쪽은 관리이고, 한쪽은 신분이 낮은 행수 등등이라고 해도 그렇다. 어딘가에 위화감이 있다. 그러나 '은호'는 좋았다. '은호'는 햇병아리급 치고는 상당한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햇병아리급으로 이렇게 포텐셜을 지니고 있는 연기자들에게는 많은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렇지만 드라마 '황진이'는 확실히 검증이 안 끝난 많은 젊은 배우들을 기용하여, 그들의 설익은 연기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해주고 있다. (이 소감문은 필자가 드라마 '황진이'의 극의 전개에 실망감을 느끼고, 특히 작가의 쓸데 없는 '말의 유희'에 분노한 가운데 쓰여진 감회입니다. 그러나 드라마 '황진이'는 이제 반환점을 돌고 있습니다. 제작진이 힘을 내서 후반부를 잘 엮어 간다면, 좋은 드라마로 완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드라마 '황진이'에 대한 기대가 컸기애 이렇게 실망과 분노도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말하면, 다 드라마 '황진이'에 대한 애정의 표현일 것입니다.) (간바레 '황진이'! , 자요(加油) 眞伊! , Muestre el valor, J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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