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 역사스페셜--주몽의 엑소더스(Exodus)—부여국 탈출기
모세 • 아브라함 • 주몽의 엑소더스(Exodus, 대탈출) 비교
(1)모세의 엑소더스(Exodus)--출애급(出埃及)기
구약성서의 중심인물로는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모세로 이어진다. 결국 모세에 의해 “애급탈출=엑소더스(Exodus),”가 이루어지는데, 모세는 이 애급(이집트)에 살고 있는 60만 유대유민(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요르단 서쪽지역)에 들어가 유대왕국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모세는 홍해에서 가나안으로의 40년 광야노정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파란의 생을 마쳐야 했고, 실제로 가나안 땅에 입성한 것은 모세의 유업을 계승받은 젊은 사자(여호수아)에 의해서였다. 그 후. 이 유대왕국은 지혜로운 솔로몬 왕의 시대에 이르러 크게 번영한다.
모세
찰턴 헤스턴이 주연한 1956년 영화 '십계'의 내용도, 애급탈출과 홍해를 건넌후 40년에 걸친 가나안 행군의 노정을 그리고 있다. 이 ‘엑소더스’는, 기마병 부대가 뒤를 쫓고 바다가 앞을 가로막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홍해가 둘로 갈라지는 기적을 보여주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실제로 가나안 땅(Canaan: 유대민족의 약속의 땅, 요르단 서쪽지역)은 이집트에서 3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데 40년이 걸렸으니……. 장엄했을 '출애급(出埃及)'의 드라마는 홍해를 건너는 순간부터 꼬여도 아주 “더럽게” 꼬여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3일 길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40여 년이 걸린 것은, 유대유민들이 비록 노예로 살았을지언정 애급에 남겨두고 온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노예일지언정, 군불은 때고 방바닥은 지필 수 있었으니, 감자나 잡곡 정도는 먹을 수 있었으니, 그 정도에 만족하고 그만 눌러살고 싶다는 세속적인 마음 때문이었다.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른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아직 미개척된 땅이었다. 천막이든지 뭐 든지 살집을 세워야 했고, 땅을 개척해야 했고,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쇠사슬에 뮦인 “개”같은 노예로 살기는 했으나, 주인이 먹을 밥은 주고 가끔은 뜯을 ‘뼈다귀’도 주니, 이 “개들”은 출애급이고 뭐고 필요없고 그냥 계속 ‘개’로서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선각자 모세가 이 무지몽매한 “개들”에게 선민의식을 고취시키고 홍해까지는 건너게 했으나, 홍해를 건넌 후의 행군에 있어서는, 아직도 여전히 생활의 타성과 속물근성에 젖어있는 그들(유대 유민들)이 모세를 선선히 따라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가나안에 입성(入城)하기 까지 40년간을 광야에서 불순종과 죄악을 저지르고, 분열과 대립, 동족간의 분쟁을 계속했던 것이다. 젊은 사자 여호수아의 등장으로 간신히 내분을 수습하여 가나안 땅에 닿을 수 있었다. 이것이 선민이라 일컬어진 이스라엘 조상들의 역사적인 “영광?의 탈출기(記)”이다.
(2)아브라함의 엑소더스(Exodus)-- ‘소돔’과 ‘고모라’ 성(城) 탈출기
아브라함은 구약성서상의 인물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3종교에서 공통으로 받들고 있는 신앙의 조상, 영원한 믿음의 조상과 같은 존재다. 소돔과 고모라 성(城) 탈출은 아브라함이 직접 행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친조카 ‘롯’에 의하여 이루어 진다. ‘소돔’과 ‘고모라’ 성(城)은 팔레스테인에 소재하고 있던, 현세의 쾌락을 쫒는 상업도시였다. 그러나 그 부패와 부도덕과 패륜(패악)과 음란과 방탕이 극에 달해 멸망하기 일보직전에 있었다 (프리섹스와 근친상간도 성행). 선각자 아브라함은 몇명이라도 의인(義人)이 남아있으면 의인들을 데리고 얼른 탈출하라고 ‘롯’에게 지시한다. 결국 아무도 ‘롯’의 권고와 호소에 따르지 않았고, ‘롯’의 탈출에 동행한 자는 ‘롯’의 처(妻)와 2명의 딸 뿐이었다. 그들(처와 2명의 딸)도 안가겠다는 것을 어거지로 끌고 나왔다. ‘롯’은 탈출을 감행하면서, 처와 딸들에게 “절대로 저 성(城)을 되돌아 보지 말라” 고 경고한다.
그러나 ‘롯’ 의 처는 저곳이 그리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저 쾌락과 환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피난 도중의 ‘롯’의 처를 다시 되돌아 보게 한다. 롯의 아내는 결국 미련이 남아서 살며시 뒤를 돌아보았던 것이고, 그러자 그 즉시 몸이 그 자리에서 허옇게 굳어내려 '소금 기둥'이 되고 만다. 즉 소금으로 화(化)하여 죽고 만 것이다. '소금 기둥'은 사람 모양의 소금 덩어리를 말하리라 (구약성서 창세기 기록).
만약에 주몽도, 경우는 다르지만, 예소야를 못데리고 온 것을 슬퍼하여 다시 부여성(城)으로 향했다면, 그도 아마 ‘소금 기둥’이 되었을지 모른다. 즉 대소(김승수 분)의 손에 잡혀 죽임을 당했을 것이리라.
(3)주몽(朱蒙)의 엑소더스(Exodus)—부여국 탈출기
주몽은 결국 예소야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유민들을 데리고 탈출에 성공했다. 주몽과 유민을 추격하는 대소의 군대는, 마치 영화 ‘십계’에서의 ‘파라오(율 브린너 扮)’와 그의 전차 기마 부대 같았다. 추격을 물리치고 고구려의 첫 도읍지에 도착한 주몽과 유민들은 “삼족오”를 날려 올리며 장엄한 고구려의 역사를 새로 열었다. “2천여년전(前)의 우리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한반도에 실질적인 첫 민족-고대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만약에 주몽이 예소야를 생각하여 부여성을 “되돌아 보았다면” 우리 역사상 고구려는 탄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주몽은 ‘소금기둥’이 되었거나, 부여국(國)의 소금 조달에나 진력하는 ‘장사꾼’ 정도 되었을 것이겠지…
주몽은 지혜롭기에
, 부인 예소야에 대한 사랑은 차후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으리라. 지혜로운 자에게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주몽」----그야말로 “전 퍄오량 <真漂亮, 漂亮的 连 续> 剧 !!!>” (→관련글)
(→관련글) 글 제목은 「"주몽"과 "해신"의 송일국에 있어서의 '예소야'와 '정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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