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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황진이(24회, 최종회)--황진이의 세남자(은호, 정한, 화담) →글 게시: 12.29(金) am.4:00

이호(李浩) 2006. 12. 29. 03:44

드라마 황진이(24, 최종회)

 

 

 

 

 

                               황진이의 세남자

 

드라마 황진이 오늘밤(12.28, ) 마지막회 방송으로, 3달간의 예술여행 짐을 내려놓았다. 시간이 짧았던 관계로 수박 겉핧기식 진행이 되었으나, 나름대로의 줄거리를 잡았고 캐릭터들을 재창조하거나 새로 만들어냄으로써, 현대 시청자들의 구미에 맞는 현대풍의 황진이 탈바꿈시키는 일단은 성공했다고 있다.

 

내용의 구성을 황진이의 남자라는 시점(視点)에서 (물론 황진이의 남자라는 ()이야말로 드라마 집을 짓는 가장 중요시되었던 기둥이자 대들보였다), 첫째가 은호, 둘째가 김정한, 그리고 세째가 서화담이다. 다루기에 따라서는 세명 모두가 성공 보증수표 만한 굴지의 카드였다.

 

1막에서의 어린 왕자은호는 진이의 첫사랑 아니었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첫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감성의 세계를 두들기는, 그래서 엄청난 임팩트를 가진 마법(魔法)’ 같은 것이었다. “은호와의 첫사랑의 스토리 1막으로 들고 나왔을 , 위와 같은 첫사랑 마성(魔性) 때문에, 1막의 스토리는 드라마를 대박궤도에 진입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얼토당토 않은 바보 짓만 하지 않는다면, 첫사랑 이야기는 무난하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을 있는 빅카드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던 같다.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작가라면 상아탑 시절, “필독 세계문학서()” 목록 정도는 봤을 것이고, 특히 명작중의 명작은 발췌라도 해서 읽어둬야 했을 텐데, 작가는 첫사랑 주제로 작품을 그리 많이 접한 같지는 않다. 은호와 진이의 첫사랑은,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의 첫사랑과도 통할 있는 부분이 있었다. 작가가 조금 연구하고 공을 들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은호와 진이의 관계는,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주인공인 블라디미르(16) 지나이다의 관계와 흡사했다. 한편의 가슴 아린 첫사랑의 비련은, 19세기초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전쟁과 평화에서 헨리 폰다(삐에르 )’와 오드리 헵번(나타샤 )’ 보여줬다.

정리하자면, 김은호와 황진이= 블라디미르와 지나이다, 또는 삐에르와 나타샤.

 

2막에서의 조선의 문객김정한은 황진이가 숙성한 여인이 되어 사랑하게 되는 두번째의 남자(사랑)이다. 첫번째의 사랑의 실연의 아픔이 남아있기에, 두번째의 사랑은 으례 머뭇거리고 튕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떤 숙명에 의해 끈이 이어진다면, 두번째 사랑은 상당히 격렬한 사랑으로 이어질 있다. 세상을 등지고 둘만의 사랑이 무르익는 곳으로 도피하는 경우도 생긴다.

영화 겟어웨이(Get Away)”에서 스티브 맥퀸 알리 맥그로우 그랬다. 이들은 영화 촬영중에 사랑에 빠져 촬영이 끝나자마자 둘이 결혼해 버렸다. 이들은 영화中에서도 남녀주인공으로 겟어웨이 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결혼과 함께 한동안 도피성 밀월 즐겼다. 알리 맥그로우 굴지의 영화사 파라마운트社 사장의 당당한 사모님이었으나, 두번째 사랑(남자)으로 스티브 맥퀸 선택한 것이었다.

정리하자면, 황진이와 김정한=알리 맥그로우와 스티브 맥퀸.

 

그러나 2막에서의 김정한과 황진이의 사랑은 결국 파국으로 끝났다. 둘이서 가야금(거문고) 대금을 연주하는 장면은 어느 사랑의 종말을 위한 협주곡정도로 이해해 두면 되리라. 물론 알리 맥그로우와 스티브 맥퀸의 불꽃사랑도 마찬가지로 파국으로 끝났다. ‘성격 차이 헤어졌다는 것이 당시의 언론보도 내용이었다.

그러면 김정한과 황진이는 갈라섰을까?  운명이라고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겠다. 굳이 애써서 설명을 한다면, 황진이의 예술과 재예에 대한 열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남녀간의 정분도 물론 인간의 본성中의 하나이지만, 어떤 영역과 경지에서 최고봉에 오르려고 하는 것도 또한 인간의 본성中의 하나이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걸고 에베레스트 산정에 오르려고 하겠는가? 하나의 비근한 例이지만, 브라질의 축구스타 호나우도(로날도)는, 월드컵 축구에서 우승했을 때가 어떤 아름다운 여자와 섹스와 사랑을 때보다도 좋았고 황홀했다고 고백한 있다. 좀더 거룩한 예를 하나 든다면, 석가모니는 처자를 버리고 출가하여 고행을 했다. () 최고 경지, 깨달음의 최고봉에 다다르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하고 같이 사는 것도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지만, 자기의 세계, 자기가 몸담고 있는 세계에서 최고가 되려고 애쓰는 것도 인간의 또하나의 본성이 되는 것이다. 높고 높은 경지, 거룩하고도 거룩한 경지에 오르려고 노력하는 것도 또하나의 자연스런 인간의 본성이 되는 것이다.

 

물론 황진이가 김정한과 헤어진 이유들을 다른 데서 얼마든지 찾을 수는 있다. “김정한의 관직복귀를 도와 세상을 이롭게 하려고 했다라는 의미도 있을 있겠다. “김정한이 여자에 대한 소유 집착하게 됐다 것도 이유라면 이유라 하겠다. 그러나 역시 황진이의 재예와 예술에 대한 열망과 속에서 (내적, 외적으로) 최고봉에 올라보고 싶어하는 황진이의 마음자세가 결정적 요인(A decisive factor) 되질 않았을까?

 

3막에서의 서화담과 황진이의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가르침과 배움에 있어서의 사제간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서화담은 황진이의 세번째 남자였다. 서화담과의 사랑 그린 방영횟수는 불과 1.5 (23 후반부와 24)이었지만, 서화담은 황진이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남자였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서화담을 등장시키고 있지만, 작가의 그런 한계(?)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드라마를 잘만 해석할 있다면 그걸로 다행한 일이다. 물론 작가가 서화담에게 1.5 분만 할당한 다른 이유가 또하나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음 기회에 지적하고 싶다. 아무튼, 황진이가 세번째 남자 서화담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됨으로써, 황진이는 춤에 있어서의 심안(心眼, 深眼) 얻게 된다.

 

 황진이 스스로가 느끼고 있었다. 기녀로서의 세속적인 명성은 높아만 가나, 무엇 때문인지 갑갑해지고, 춤에 있어서도 정체(停滯, 渟滯)감을 느끼고 있었다. 작가는 황진이가 저자거리로 뛰쳐나간 것을 다른 이유로 설명(“춤과 재예을 감상하는 심성에 있어서는 신분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차별이 없다” )하고 있지만, 물론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희로서 높아가는 명성과는 반대로, 기술적인 , 기계적인 춤의 반복에 황진이는 분명 답답해했고, 어떤 돌파구를 찾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거리로 나갔을 것이다. 거기서 서화담을 만난 것이다. 역시 교방에 틀어박히기 보다는, 담장을 뛰어 넘기를 했다. 서화담과의 짧은 교류였지만, 진이는 심안을 얻었다. (물론 작가는 진이가 심안을 얻어 춤이 일취월장했다는 사실을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 주몽의 해모수 장님이 되었지만 심안을 얻지 않았는가? 어느 스포츠紙에 연재됐던 방학기(?) 바람의 파이터에서도 주인공 최영희가 눈이 안보이면서도 심안으로 보면서 강적들을 쓰러뜨려 가지 않았는가?

 

가장 실재적인 실례를 하나 들겠다. 무용가 홍신자, 바로 그녀이다. 홍신자도 명성이 꽤나 있었던 무용가였으나, 언제부터인지 무용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그녀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종교지도자 라즈니쉬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홍신자의 차원 높은 정신세계가 열리면서, 그녀의 무용세계도 쩌억벌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정신적 지도자 라즈니쉬와의 만남이 그녀의 무용을 깊이 넓게 높이  비상(飛翔, 飛上)하게 것이었다.

정리하자면, 황진이와 서화담=홍신자와 라즈니쉬.

 

다음에 시간이 나면 쓰고 싶은

작가가 서화담에게 1.5 분만 할당한 이유

●진이와 부용의 관계—‘여자 베드로여자 바울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