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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회) 야먀자키 도요코(山崎豊子)의 “화려한 일족”

이호(李浩) 2007. 4. 16. 00:21

(최종회) 야먀자키 도요코(山崎豊子) 화려한 일족

 

금일적(今日的)” 주제가 신선한 금융계가족 드라마

 

 

야마자키 도요코의 화려한 일족(一族)” 1970 3 부터 1972 10월까지 주간신쵸(週刊新潮)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드라마의 시대설정은 1960년대의 고베(神戸)이다.

 

  금융계는 격동의 세계인 2000년대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지만, 35년余 前의 소설을 지금 다시 보더라도, 조금도 시대에 뒤쳐진 소설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금일적(今日的) 주제가 신선한 이야기로서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TBS에서 드라마로 제작하여, TBS 개국55주년 기념프로로서 빙송을 내보냈던 것이다.

 

1974년 영화  화려한 일족 :

1974 1 26일 공개. 야마모토 사쯔오(山本 薩夫) 감독. 사부리 (佐分利信=万俵大介 ) & 나카다이 타쯔야(仲代 達矢=万俵鉄平 ) 주연,

 

1974 TV 드라마 ( 테레비 朝日)  화려한 일족 :

197410 1-1975 3 25. 매주 화요일 밤10시부터 방송. 26회 방송. 야마무라 소우(山村 =万俵大介 ) 주연. 12회 갸라쿠시賞 수상 작품,  

 

2007TV 드라마 (TBS系列)  화려한 일족:

 2007 1 14-3 18. 매주 일요일 9 방송. 드라마에서는SMAP의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 주연으로 나왔다.  원작 이전의 영화드라마에서는 한신은행(阪神銀行) 총재인 만표 다이스케(万俵大介)가 주역이었지만, TBS드라마에서는다이스케(大介)의 장남으로 만표재벌(万俵財閥)의 주력기업인 한신특수제강(阪神特殊製鋼)의 전무를 맡고 있는 만표 텟페이(万俵鉄平)가 주역(主役)으로 발돋움 했다.

 

텟페이는 오랜 염원이었던 한신특수제강(阪神特殊製鋼) 고로(高炉=거대 용광로) 건설에 착수한다. 물론 메인 뱅크인 한신은행(阪神銀行)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신은행의 총재(頭取) 다이스케는 도와주기는 커녕 사사건건 방해만 놓고 텟페이를 몰아내려 한다. 여기에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텟페이는 다이스케의 약점을 잡고 고소(告訴)를 하게 된다.

 

  다이스케는 대장성(大蔵省)의 방침으로 금융재편의 파도가 밀려오자, 오히려 예금고(預金高)에서는 한신은행보다 우위에 있는 다이도 은행(大同銀行)을 합병시키고자 책략을 도모한다. 한편, 이 다이도 은행(大同銀行)한신특수제강(阪神特殊製鋼)과는 깊은 커넥션이 있는 은행이다.

 

  다이스케는 우선 갖은 수법을 동원하여, 한신특수제강에 회사갱생법(会社更生法) 적용되게 하고, 전무(専務) 만표 텟페이를 비롯한 주요 임원(役員)들을 해임시킨다. 한신특수제강에 새롭게 등장한 파산 관재인(破産 管財人), 텟페이가 제소(提訴)하여 유리하게 진행시켜온 재판을 일방적으로 취하해 버리고,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한다.

 

  한신특수제강의 파산(?)으로 다이도 은행(大同銀行) 커넥션으로부터 자유로울 없었고, 결국은 다이스케가 총재(頭取) 있는 한신은행에 합병당하고 만다.

 

  다이스케의 1목적은 다이도은행(大同銀行) 흡수통합이었다. 나머지는 나중 문제였다. 최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예금고에서 밑도는 은행이 예금고에서 앞서는 은행을 통합하다니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모두다 다이스케의 능수능란한 수완 덕이다. 그것도 텟페이까지 몰아내면서 성사시킨 것이다.

 

 텟페이는 이제 더이상 해볼 것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의 아내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별을 고하고 산중으로 향한다. 죽기 위하여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진 1> A figure just before suicide of Manpyo Teppei(Kimura Takuya)

 

  그리고 엽총자살을 하며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가 죽은 사망확인서가 다이스케에게 전해진다.

 

 그런데 이게 어찌 일인가? 텟페이의 혈액형은 B 형이었다. 사망확인을 의사가 분명하게 B 형이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기록에서는 텟페이의 혈액형이 A형으로 나와 있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검사였다는 것이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는가?

 

 텟페이의 조부(祖父) 케이스케(万俵敬介) 혈액형은 A이었고, 텟페이의 아버지인 다이스케의 혈액형은AB이다. 케이스케의 며느리이자 다이스케의 처() 야스코(万俵寧子)의 혈액형( O?)과의 조합으로 따져볼 때, 케이스케가 A이기 째문에, 텟페이가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성관계에 의해 태어났다면 텟페이의 형액형은 A이거나 (아니면O?이거나)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사망진단서에서 확인된 텟페이의 혈액형은 B 형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케이스케(万俵敬介) 직접 핏줄은 아닌 것이다.

 

그러면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텟페이는 결국 다이스케의 친아들이 되는 것이 아닌가? 케이스케의 얼굴을 닮았다는 이유로, (잘못된 검사로 인한)혈액형이  A형이었다는 이유로, 다이스케는 텟페이에게 아들 대접을 안하고 괴롭히다가 죽음으로까지 몰고 것이 아닌가?

 

텟페이의 시신 앞에서 회한의 눈물을 뿌리는 다이스케. 비오는 텟페이의 장례식도 치뤄진다. 그러나 다음 , 다이도 은행(大同銀行) 한신은행(阪神銀行) 합병 조인식 , 회견장에는 냉혹한 사업가의 얼굴로 다시 돌아와 있는 다이스케였다.

 

그러나 텟페이가 케이스케의 아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疑念)으로부터 해방된 다이스케는, 처인 야스코(万俵寧子) 애인인 아이코(高須相子) 집에서 동거하는 사이쇼도킨(妻妾同衾)” 생활은 청산한다. 사이쇼도킨은 처()인 야스코에 대한 일종의 복수였다. “시아버지(케이스케=敬介)와 잠자리를 같이 했던 며느리(야스코=寧子)”에 대한 가혹한 형벌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의혹이 풀린 이상, 다이스케는 처()인 야스코(寧子)에 대한 배려로서, 처첩(妻妾)을 한 지붕 아래 동거시키는 기묘한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한신은행(阪神銀行) 다이도은행(大同銀行) 합병성립 , 다이스케로부터 위자료(퇴직금?) 건네 받고, 아이코(高須相子) 만표가(万俵家) 떠난다.

 

이렇게 하여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불륜을 설정하면서, 또한 처첩(妻妾) 집에 동거시키는 사이쇼도킨(妻妾同衾)” 을 화두(話題)로 던지며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전개했던 화려한 일족은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고 말았다.

 

1960년대-70년대의 사회적 배경으로 보아, 야마자키 도요코가 처음의 파격적인 스토리 구성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사회윤리, 가족윤리 앞으로 얌전하게돌아와 앉은 것이다. 야마자키 도요코는 그냥 작가였지 철학자▪사상가는 아니었다.

 

만약 야마자키 도요코가 니체안”(철학자 니체<Friedrich W. Nietzsche : 1844~1900> 사상에 공감하여 따르는 사람들) 이었다면, 기존의 사회윤리를 그다지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니체 앞에서는 사회윤리, 도덕, 관습, 제도, 사상, 종교 등 기존의 가치들이 무용지물이었다. ()에게 까지 사망선고를 내린 그가 아니었던가?

 

니체는 실재적인 것, 자연적(自然的)인 것을 추구했다. 「선악의 피안(彼岸)」이라는 그의 저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선과 악의 기준을 도대체 어디에 두고 있느냐고 되물으며, 인위적인 것▪제도적인 것을 넘어선 자연적인 것▪본성적인 것의 추구를 주장하고 있다.   니체는 자연주의자였다. 기존의 관념, 제도, 윤리, 도덕 등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니체의 사상이다. “포스트 모던적인 내용인 것이다.

기존의 사회질서와 관습 속으로 조용히 되돌아온 야마자키 도요코는, 이른바 오래된 계몽주의라고나 할까?

 

야마자키 도요코는 하연 거탑에서도 스케일이 크고 도전적인 인물을 묘사하다가도, 나중에는 그냥 자이젠 고로(財前五郞, 장준혁=김명민 분)를 죽이고 만다. 이것도 자연주의를 추구하다가 계몽주의로 되돌아온 결말이다.

 

야마자키 도요코의 소설에 대한 찬반 논쟁은 순전히 독자들, 시청자들의 몫이다.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사진2> (Episode 1) Kimura Takuya in the Hokkaido location spot(the 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