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랑] 일본은 왜 섹스에 관대한가 [조인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서방 세계에 일찍 문호를 개방한 탓인지 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우리보다 관대하고 또한 한결 자유로워 보인다. 한때 서방 언론으로부터 섹스 애니멀이란 비난을 받았던 일본 관광객들의 매춘행각도 바로 그런 국민의식에서 싹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심에 러브호텔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섹스를 조명해 보면 인간의 섹스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지배되는 것들이 아주 많다. 로마제국의 화려했던 문화도 그리스나 이집트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일본의 경우도 토속종교와 관련이 깊다. 세계 어느 민족이나 그들의 성은 신과 교류하는 방편으로 종교적 의식의 하나로 이용되고 또한 발전해 나갔다.
실제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의 고서(古書),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지는 우리나라 민요 같은, 우다가키(歌垣)라는 노래 가사를 살펴보면 성에 관한 그들의 신앙과 생활풍습이 얼마나 자유로운 것인지를 알게 된다. 특히 8세기 전후, 일본인의 성애에 대한 태도, 성교 신앙을 상세하게 그려놓은 『풍토기(風土記)』란 책은 일본인의 성 의식을 상세하게 이해하는 데 더없이 훌륭한 정보를 제공한다.
신을 공경하는 종교의식에서 섹스는 잡념이 사라진 두뇌상태를 제공함으로써 제신(諸神)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거기서 발생하는 유열을 통해 삶과 죽음을 구별하고 그러한 영적 체험이 그들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믿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섹스의 엑스터시가 곧 인간에 있어서 불가사의한 육체적 현기증이고 전율이며, 또한 환호에서 나오는 오열이라는 성의 현대적 해석이 매스터즈의 ‘인간의 성반응’ 이론보다 앞서 제시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남녀가 그 축제에서 사흘 낮과 밤을 함께 지낸다 하더라도 성기결합에 의한 섹스가 행해지는 것은 아니고, 단지 여성은 자신의 음부를 상대방 남성의 무릎에 대고 비벼대거나 남자의 페니스를 오럴 섹스의 방법으로 애무하는 간접적 방법이었는데, 이런 방식의 성행위를 무무아와세(股合)라고 부른다.
이런 방식의 섹스는 임신의 염려가 없는데다 성애의 아름다움과 통상적 성교 이상의 쾌락을 가져다주고 육체적 피로감 없이 반복해서 긴 시간의 성애를 즐기게 해 준다는 특성 때문에 지속적 환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결국 남녀 간의 사랑을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영양제 같은 것이었다.
섹스는 종족이 멸종되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심경에서 신이 인간에게 준 쾌락이란 미끼를 달았다고 하는 것이 현대 의학의 설명인데, 일본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 입장이다. 즉, 인간의 애욕과 성욕은 생식을 위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신의 경지에 접근하기 쉽도록 개개인에게 감미로운 열락(悅樂)을 생산한다는 데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의식은 지금까지도 전래돼 섹스의 자유로움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을 본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 중 하나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일본인 의사 한 분이 틀니를 본뜰 때 사용하는 붉은색 레진으로 잘 발기된 페니스를 만들어 서재에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그 훌륭한 솜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 환자들이 실망해 도망하지 않겠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일본에서 남녀의 방에 남근상(男根像)을 두는 것을 외설적인 의미로 보는 사람은 없으며, 오히려 전통적 토속신앙이란 면에서 부부 사이 혹은 연인관계를 더욱 증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일본 온천에서 한때 남녀혼욕이 있었던 것이나, 남근상 숭배는 모두 일본인 토속신앙의 산물이다. 개화기 일본 도쿄, 차이나타운에 남근상을 모신 예배장소가 마련돼 있었던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남근상이 복을 불러오는 연기물(緣起物)이라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거기에 대고 재물운(財物運)을 비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