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플래닛/Youtube 스토리

[스크랩] [대중음악 100대 명반]50위 이문세 ‘이문세5’

이호(李浩) 2008. 7. 30. 11:21
ㆍ故이영훈·이문세 듀오의 최고 걸작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이 앨범을 둘러싼 역학관계는 매우 특이하다. 가수나 음반사는 주류음악 영역에 속하고, 얼마전 작고한 작사·작곡자 이영훈이나 편곡자 김명곤도 성인 취향의 음악에 관계한 인물들이었지만 정작 이문세의 활동방식은 전적으로 라디오와 공연에 의존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그것이었다. 그래서 이 앨범은 1980년대 한국 주류음악을 대표하지만 성공한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주류음악의 대표적 뮤지션의 작품에서 최절정의 예술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지금과는 달랐던 ‘풍요로웠던 80년대 대중음악계’를 짐작케 한다.

그렇다고 이 음반을 둘러싼 뮤직 비즈니스가 고상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문세의 전작인 4집(1987)이 ‘사랑이 지나가면’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으로 공전의 히트작이 되면서 본 앨범은 나오기도 전에 선주문만 수십만장을 기록했다. 당시 소속사였던 킹레코드는 음반(LP) 가격을 무려 1000원 가까이나 올리는 얄팍한 상술을 발휘했다. 이 일로 인해 일부 도매상들이 판매 보이콧을 하자는 강경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음반이 워낙 잘 팔리는 바람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상술을 가진 음반사에서 나온 앨범이 최고의 예술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적어도 당시 음반 제작자들이 창작과 세션, 녹음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에서 지금보다 뛰어난 안목을 가졌다는 점을 입증한다. 최소한 그들은 ‘음악의 퀄리티’로 음악 소비자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인식 정도는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문세의 가수로서 성공은 향후 ‘이문세의 전속 작사·작곡자’가 되는 고(故) 이영훈을 만나게 되면서였다. 79년 대학 3학년 재학 때 라디오 DJ로 방송 데뷔한 이문세는 81년 ‘나는 행복한 사람’이 담긴 데뷔 음반과 83년 2집을 발표할 때까지 평범한 가수였다. 그러나 이영훈을 만나면서 단박에 당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발돋움했다. 85년 3집에 실린 이영훈의 곡 ‘휘파람’ ‘소녀’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 가수로서 재조명을 받은 그는 또 하나의 걸작인 4집을 거쳐 그들 듀오 최상의 작품인 ‘80년대 발라드 팝의 정점’ 5집을 발표했다. 여기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에 이어지는 LP B면의 수록곡들인 ‘붉은 노을’ ‘기억의 초상’ ‘끝의 시작’ ‘사랑은 한줄기 햇살처럼’은 가히 이문세 경력에서 베스트다. 주류음악신에서 “상념에 휩싸인 채로 나 지난날처럼 그 꽃집을 찾았지/ 하얀 안개꽃잎 입맞춤에 떨려 지난 모두 기억하는데/ 내 맘을 쉬게 하여줘 창가에 비치는 너의 모습/ 흩날리는 빗자락에 쌓여 어리운 빗물인 것을”(안개꽃 추억으로)과 같은 가슴 떨리는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하지만 이문세-이영훈 체제의 빛나는 창작성은 이후 7집(1991) 정도까지만 유지된다. 90년대로 넘어오면서 달라지기 시작한 대중음악계의 조류에서 그들 작업이 멀게 느껴짐으로써 그들의 화려했던 관계는 소멸됐다. 이영훈이 참여한 또 다른 걸작으로는 이광조의 ‘세월가면’(1987/성음)을 꼽을 수 있다.

〈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gaseum.co.kr 〉
출처 : [대중음악 100대 명반]50위 이문세 ‘이문세5’
글쓴이 : 헤르메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