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이호의 FORUM

SK의 최태원

이호(李浩) 2011. 5. 8. 10:54

SK의 최태원

 

최태원과 ’선물’의 모진 ‘인연’

2011/05/07 16:54

 

 

 

악연(惡緣)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재계 3위 재벌인 SK의 최태원 회장이 거액의 해외 선물투자 스캔들로 다시 위기를 맞았다.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와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이 있은 지 8년 만이다. 공교롭게도 글로벌 사태의 발단은 선물투자 실패와 그로 인한 막대한 손실이었다.

 

 

1997년 초부터 비롯된 SK글로벌 사태

 

글로벌 사태는 2002년 2월 검찰의 전격 압수수색으로 시작됐다. 검찰은 트럭 몇 대분의 비밀장부를 확보해, 1조5천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분식회계 사실을 적발했다. 검찰은 처음부터 분식회계에 혐의를 뒀던 것은 아니지만, JP모건과의 이면거래 혐의 때문에 압수수색을 했다가 망외의 소득을 거두었다.

압수수색의 빌미가 된 이면거래 건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K증권은 역외펀드를 설립한 뒤 JP모건의 자회사로부터 거액을 빌려 동남아 채권 연계 파생상품에 투자했다. 그러나 동남아 통화 위기로 수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SK증권과 JP모건은 손실 책임을 둘러싸고 법정 공방을 벌이다가 1999년 이면계약을 체결했다. JP모건이 SK증권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3년 뒤 웃돈을 붙여 SK가 주식을 되사주기로 타협한 것이다. 결국 SK글로벌 해외 법인이 SK증권 주식을 비싸게 되사주는 역할을 맡으며 1천억원대의 손실을 떠안았고, 이것이 검찰 수사의 발단이 됐다. 당시 검찰은 SK의 또 다른 거액 선물투자 손실을 밝혀내 충격을 던져줬다. SK해운이 이사회 결의 없이 8천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해외 선물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본 것이다.


SK는 최 회장의 선물 투자자금 출처와 관련해 개인돈이고, 회삿돈은 아니라고 해명한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수년 전부터 SK(주)와 SK케미칼 등의 주식을 팔고, 갖고 있는 SKC&C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4천억~5천억원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도 개인돈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회삿돈 유용’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해가는 모양새다.

 

전체 선물투자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거래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떻게 하다가 손실을 보았는지 등 궁금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1천억원대로 알려진 손실 규모도 정확하지 않다. 일부에서는 투자 금액이 최 회장 개인돈이라면 손실이 얼마가 됐든 상관할 바 없지 않느냐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최 회장의 개인돈이 맞더라도 탈루세금 추징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다. 하나는 해외 투자금 중 일부라도 미신고소득이 포함됐을 가능성이다. 미신고소득이란 말 그대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탈루소득이다. 당연히 세금 추징 대상이다. 재벌 총수들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자금 출처를 입증할 돈이 없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은가.

두 번째는 선물투자 손실을 메우려고 사용한 돈의 일부가 미신고소득일 가능성이다. 선물은 상품을 미래의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값으로 거래하겠다고 약속하는 거래 방식으로, 주로 주식이나 외국환, 원자재 등이 대상이다. 선물의 특성은 투자금의 1~2%만 증거금으로 내면 거래가 성사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예상이 잘 맞으면 100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반대의 경우는 백배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최 회장이 만약 1천억원대의 손실을 보았다면 실제 원금은 그보다 훨씬 적었을 거고, 손실을 메우는 데 추가로 거액이 쓰였을 텐데, 그중 일부에 미신고소득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시장에서는 최 회장의 실제 손실 규모가 1천억원대가 아니라 4천억원대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잘 아는 선물 투자로 자금 수요 해결하려?

 

세 번째는 지금은 투자 손실을 보았더라도 과거에 이익을 본 적이 있다면 역시 과세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최 회장의 해외 선물투자가 최근에 이뤄진 게 아니라 역사가 꽤 오래됐고, 이전에는 이득도 봤다는 얘기가 있다.

큰손들이 불법적으로 역외 금융투자에 나설 때 동원하는 일반적인 수법은 국내에서 몰래 거액을 빼내거나, 해외 현지 법인과의 거래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자금을 조성한 뒤 가차명의 현지 법인이나 계좌를 만들어 투자하는 것이다. 일부 기업인은 경영권 방어나, 내부 정부를 이용한 주식거래 차익을 노리고, 외국인으로 위장해 국내의 자사 주식을 사들인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들 ‘검은머리 외국인’은 세금 회피를 위해 우리나라와 이중과세 방지조약을 맺고 금융소득에 대한 세금이 적은 곳을 주로 이용한다”며 “검은 머리 외국인의 정체가 국내 거주자로 드러나면 투자이익에 대해 세금이 추징된다”고 말했다.

SK 안팎에서는 벌써 최 회장 개인에 대한 거액의 탈루세금 추징설이 흘러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국세청으로부터 1천억원대의 세금 추징을 당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대 의문은 최 회장이 위험한 선물투자를 왜 감행했느냐다. 최 회장이 선물투자로 1천억원 이상의 손실을 보았다면 그만큼 큰돈을 노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SK 주변에서는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자금 수요가 주로 언급된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계열사 간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SK텔레콤이 갖고 있던 SKC&C 지분 9%(450만 주)의 인수 필요성, 지주회사제 요건 충족을 위해 SK네트웍스와 SKC의 SK증권 지분(30.44%) 인수 필요성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SK 안에서조차 납득이 안 된다는 시각이 많다. 계열사의 한 고위 임원은 “최 회장이 3~4년 전부터 확보한 자금만 갖고도 당장 필요한 지분 인수는 가능했는데, 왜 그런 위험을 감수했는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창업 세대와 다른 재계 2·3세의 특징도 작용했을 수 있다. 재벌 총수들이 종잣돈을 만드는 전형적인 방법은 ‘일감 몰아주기’다. 개인 회사를 세운 뒤, 다른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서, 기업 가치를 키우고, 증시에 상장시켜 자본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이 방법은 시간이 좀 걸리지만,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적은 게 장점이다. 하지만 사회적 비난이 부담이다.

최 회장으로서는 평소 관심이 많고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금융 쪽에서 대안을 찾았을 가능성이 있다. 재벌그룹 창업 세대는 전통적으로 자신의 고유사업이 아닌 주식투자 등으로 재테크를 하는 것에 낯설어한다. 하지만 젋은 재벌 2·3세들은 다르다. 한 재벌 2세 총수는 “매출이 수조원에 달하는 회사가 1년 내내 땀 흘려 일해도 1천억~2천억원 이익을 내기가 어려운데, 주식은 잘하면 수천억, 아니 수조원도 바로 벌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대학을 졸업한 최 회장의 주변에는 같은 대학 출신을 비롯해 외국 물을 먹은 인사들, 특히 나름대로 금융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로 늘 붐벼왔다. 최근 주식 내부자거래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의 김아무개 대표가 대표적이다. 최 회장도 금융·벤처 투자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다. 2001년 재벌가 2·3세, 젊은 벤처기업 최고경영자들과 함께 ‘브이소사이어티’라는 투자 모임을 만들었다.

 

SK의 공든 탑 무너지나

 

이번 사건은 최 회장이나 SK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당장 세금 탈루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차명계좌가 사용됐다면 실명제 위반이다. 타이밍도 좋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올해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조세정의’를 제시했다. 최 회장은 이미 2003년 SK글로벌 사태를 계기로 6개월여간 감옥 안에서 인생의 쓴맛을 맛보았다. 최 회장은 소버린 사태를 계기로 기업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여,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국내외에서 사회책임경영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사건으로 그동안 쌓은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을 맞았다. 최 회장은 감옥 안에서 자신의 대에서 SK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그 이상의 위기감을 갖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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