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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중음악 100대 명반]49위 루시드 폴 ‘Lucid Fall 1집’

이호(李浩) 2008. 7. 30. 11:21
ㆍ사랑과 이별, 따뜻한 詩가 되다

무심한 듯 툭, 치고 나오는 기타 스트로크로 앨범의 문이 열린다. 금세라도 생명의 빛을 잃을 듯 지친 목소리가 더듬대며 나와 ‘새벽녘 내 시린 귀를 스치듯/ 그렇게 나에게로 날아왔던 그대’(새)를 찾는다. 가슴 한 구석,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조윤석의 또 다른 이름 루시드 폴(Lucid Fall)의 음악은, 그 이름과 일란성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 맑고 투명하다는 의미의 ‘Lucid’와 가을을 뜻하는 ‘Fall’의 만남. 청명한 가을. 그 허무하리만큼 높고 푸른 하늘과 제법 차가워진 바람을, 조윤석과 이 앨범은 꼭 닮았다.

그가 몸담았던 밴드 ‘미선이’의, 유약하지만 세상을 향해 다소 거칠게 내뱉던 목소리와 몸짓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앨범을 듣고 당황했을 것이다. ‘미선이’와 ‘루시드 폴’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하나 놓여 있다. 두 작업 사이에 놓인 시간이, 밴드에서 혼자가 된 조윤석이 그 강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 앨범은 세상의 모든 것에 등을 돌리고 ‘매일 아침에 잠을 설치듯/ 아쉬운 그대’(해바라기)만을 바라보며 구구절절 사랑을 노래한다. ‘모든 게 우릴 헤어지게 해’(나의 하류를 지나), ‘이러다 지쳐 쓰러지면 너를 잊을까’(너는 내 마음속에 남아)라며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대신 무심한 목소리로 노래만 하는 이를,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앨범에 담겨 있는 음악들 역시, 그렇게 큰 소리 한 번 못 쳐봤을 듯 여리고 안쓰럽다. 어쿠스틱 버전도 존재하는 ‘새’의 밴드 버전이나 수록 자체가 다소 당황스러운 ‘Take 1’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형적인 포크 음악을 뼈대로, 오보에나 드럼 정도의 간단한 어쿠스틱 악기들이 더해진다. 여기에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들이 종종 오버랩되면서,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이 참 섬세하게 조율돼 있다. 노랫말의 단어 하나도, 한 음 한 음의 전개도, 기타 현을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도, 허투루 쓰인 것이 없다.

그리고 이 앨범이 가진 수많은 미덕 중에는 노랫말이 있다. ‘종이배처럼 흔들리며/ 노랗게 곪아 흐르는 시간/ 어떻게 세월을 거슬러/ 어떻게 산으로 돌아갈까/ 너는 너의 고향으로 가네/ 나의 하류를 지나’(나의 하류를 지나), ‘새벽녘 내 시린 귀를 스치듯/ 그렇게 나에게로 날아왔던 그대/ 하지만 내 잦은 한숨소리/ 지친 듯 나에게서 멀어질 테니’(새). 앨범의 아무 노래나 집어 뚝 잘라 보아도, 모두 그림이 되고 시가 된다.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음악을 하는 이 중 이런 뮤지션이 있다는 것, 행운이다.

이 앨범을 시로, 노래로 가득 채우고 있는 애틋한 기운은, 듣는 이를 애써 위로하려 하거나, 반대로 그들에게서 위로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루시드 폴의 음악이 사랑과 이별에 한 없이 천착하면서도, 이런 부류의 음악이 가지기 쉬운 값싼 감상에 빠지지 않는 포인트는 바로 그 곳에 있다. 담담한 표정으로, 또 목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날카롭게 저미는 고급 기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앨범이다.

〈 김윤하 | 웹진 가슴 편집인 〉
출처 : [대중음악 100대 명반]49위 루시드 폴 ‘Lucid Fall 1집’
글쓴이 : 헤르메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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