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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인수대비(세조의 맏며느리)의 천당과 지옥

이호(李浩) 2007. 10. 24. 12:39

사극드라마--

 

인수대비(세조의 맏며느리)의 천당과 지옥


 

요즘, 조선왕 세조와 성종 때의 일을 다룬 드라마가 많이 나와 있다. 어느 케이블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왕과 비”, kbs드라마 “사육신”, sbs드라마 “왕과 나” 등도 그 때의 일을 다루고 있다.


이런 드라마에서 수양대군(세조)은 무지막지한 살육의 주인공으로 묘사되고 있다. 수양대군은, 이유와 그 명분은 차치하고서라도, 북방의 거인 김종서, 바로 아래동생 안평대균, 성삼문 등 사육신, 바른 말 잘하는 동생 금성대군, 그리고 드디어 어린 조카 단종(노산군)의 숨통까지도 끊어 버린다.


단종의 시체가 어찌 처리되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강물에 떠내려갔다는 설도 있다.


엄청난 ‘살육’이었다. 세조는 그렇게 하지 않고는, 왕조와 자신의 권력을 지켜낼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세조의 이 행위는, 권력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조선 땅을 “킬링 필드”로 물들인 이 사건들에 대해, 세조에게도 나름대로의 대의명분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런 살육의 사건들을 세조의 시각에서 분석해보는 일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


그런데 이 수양대군 시대의 모든 정란을 기획하고 책모했던 자는 한명회로 알려지고 있다. 한명회의 꾀와 머리가 없었더라면 수양대군의 정변이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조선역사 연구자들이 믿어온 정설이다.


그러나 한명회보다 한 수 위인 여인이 있었다. 바로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의 부인(세자빈)이었던 수빈 한씨이다. 세조에게는 맏며느리였던 것.

수빈 한씨--이 여인이 바로 훗날의 인수대비가 되는데, 성종의 어머니요, 연산군에게는 할머니가 되는 여인이기도 하다. 성종때 대비가 되어 왕실정치를 탄탄하게 다져 나가게 한 철의 여인이었다.


세조가 큰 정변을 일으키며 때로는 힘에 부쳐할 때에 세조 곁에 있어준 이는 바로 수빈 한씨였고, 후에 한명회가 궁지에 몰릴 때 한명회의 정치적 명줄을 이어준 이도 수빈 한씨였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가 젊은 날 ‘염병’에 걸려 세상을 뜨자, 미망인이 된 채 어린 아들 월산군과 자산군(성종)을 사가로 데리고 나와 왕재교육을 시키며 훗날을 도모했던 집념의 여인이요, 야망의 여인이었다.


수빈 한씨--친정 아버지는 세조때 좌상을 지냈으니, 명문가의 딸이었다. 그리고 이 수빈의 친정 아버지는 야은 길재의 제자였다.

야은 길재라고 하면, 고려말 천하의 대학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수빈 한씨의 가문이, 이처럼 뼈대있고 학식있고 명망있는 가문이었던 것이다.


세조가 창병과 쇠약증으로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내다 죽자, 의경세자의 동생 해양대군(예종)이 잠시 왕위를 잇지만, 해양대군(예종)도 제명에 못살고 급살을 당한다.


그리고 드디어 수빈 한씨의 둘째아들 자산군(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수빈 한씨는 인수대비로 격상된다.


여기서 성종의 후궁으로 들어오는 윤소화(훗날 폐비 윤씨)를 놓고, 성종과 인수대비는 심한 갈등을 겪지만, 결국은 인수대비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훗날 윤소화의 아들 연산군에 의해 인수대비는 박치기를 당하며 나가떨어지니, 손자에게 당한 할머니 치고, 인수대비 만큼 비참한 경우가 더 어디 있었겠는가? 성종은 비록 성군으로서의 업적은 남기고 있다고 하나, 맹한 구석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명회보다 한수 위인 정략을 구사하며 세조의 정변 때 일등공신 역할을 했고(수빈 한씨), 성종을 왕으로 만들고 왕실을 그 치마폭에 감싸며 한 시대를 호령했던 철의 여인(인수대비)!


그러나 인수대비도 성종과 윤소화의 사랑 만큼은 막질 못하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고약한” 손자 연산군에 의해 분통한 말로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기에 비운의 여인이 되고 말았다. 아! 여인의 운명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