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비리바보(unbelievable)! 역사 스페셜--황진이와 서경덕 (저널로그)
암비리바보(unbelievable)! 역사 스페셜--황진이와 서경덕
(2006년 10월 13일)
황진이가 육체적인 사랑을 포기하고 정신적으로 사랑했던 사람. 그가 바로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1489∼1546) 선생이다. 황진이는 평소 서화담을 흠모하던 중 한번은 그 인물의 됨됨이를 시험하려고 어느 비오는 날 화담선생을 찾아갔다고 한다. 햐얀 속치마 저고리 차림. 비에 젖어 옷이 몸에 밀착되니, 여체의 아름다운 각선미가 드러났을 터. 서화담은 이부자리를 펴 황진이를 눕히고 몸을 말리게 해 준다. 그리고 나서 다시 꼿꼿하게 좌정하여 글 읽기 삼매(三昧)에 빠진다(enter into a state of perfect concentration on reading). 황진이는 은근히 서화담의 손길이 뻗쳐오길 기대했으나 화담은 밤새 미동도 하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되면 황진이의 ‘자연굴복’이다. 예를 갖추고 큰 절을 올리며 서담에게 수학 할 뜻을 밝히는 황진이. 이래서 황진이와 서화담 사이의 ‘전설의 로맨스’ 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정신적인 사랑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들의 사랑이 테마가 된 송도3절(松都三絶)이란 말이 나왔겠는가? 송도 즉 개경에서 가장 빼어난 3절( Super Excellent Three)이란, 박연폭포를 끼워서 황진이와 서화담을 일컫고 있다. 고결한 큰 학자 한사람과 천하절색의 여류시인 황진이, 그리고 절경 박연폭포라!-----정말 아름다운 그림이다. 조선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그림이로다.
이들의 시적 경지 또한 높디 높구나. 서화담도 가끔은 황진이를 그리워했고 그 마음을 시조로 남기고 있다.
마음이 어린 후(後)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내 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는 건가? 한 선비 학자가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산중에 바람 불어 나뭇입 떨어지는 소리가 진이(眞伊)의 발자국 소리로 들릴 정도로, 서화담도 황진이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황진이. 그도 스승에 비해 시(詩)에서 만큼은 뒤질 게 없었다. 황진이의 답시도 그리움과 슬픔을 삼키는 여인의 정한이 실려 있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야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난 닢 소래야 낸들 어이 하리오
한번 안기고 싶은 님이지만, 너무나도 고결한 선비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님. 그냥 문하생으로서 수학하는 일에 만족해야 하는 님.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난 닢 소래야 낸들 어이 하리오.”----달밝은 깊은 밤에 님에게 기대보고 싶은 마음도 (감히 품을 수) 없으니, 가을 바람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까지 내가 어찌 하겠는가? 남녀간의 사랑은 포기했지만, 스승에 대한 사모와 흠모의 정이 묻어 나고 있다. 눈부실 정도로 슬픈 여인의 정한이다.
그렇다면 조선 팔도에서도 가장 빼어난 미모와 음률를 지닌 황진이에게도 넘어가지 않았던 화담 서경덕 선생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도(道)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었을까? 남녀의 정을 나누자는 황진이를 감복시켜 제자로 삼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정신적인 사랑과 그리움으로 관계를 지속했던 투 피플( two people)!
서화담----정신 연마를 계속하여 일정한 경지에 오른 것만은 틀림없다. 속된 말로 이야기 하면 “달관한” 사람이었고, 불교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깨달음을 얻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른” 사람일 것이다. (→계속)
(→ 계속) “깨달음을 얻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른” 사람----서화담을 불교식으로 설명하자면 그렇다. 그렇다면 석가모니의 ‘말씀’을 빌리면, 그(서화담)는 자유인였고, 드디어 린네(윤회, 전생)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이는 해탈한 사람에게 주어진 자격이요 권리이다. 화담은 색(色)으로부터 자유로워 있었다. 황진이의 색(色)으로부터도 초월해 있는 그였지 않았는가? 이는 불교의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와 서화담을 비교하면 누가 더 높은 경지일까? 우리의 눈 앞에 보인 결과만을 놓고 볼 때는 원효가 ‘파계’를 했으니……그러나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자. 원효대사는 그리 간단히 볼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화담은 자연철학자였고, 조선의 주기설(主氣說)을 창시하였으며, 그의 주기적(主氣的) 태도는 율곡 이이(栗谷 李珥) 등을 거치며 실학으로 발전되었다. 주기설과 실학----이런 흐름이라면 서양의 니체의 사상과 가깝다. 니체로부터도 자연철학자로서의 모습이 엿보인다.
니체. 그가 누구던가. 서양문명, 서양사상을 “깡그리” 부정해버린 포스트모던이즘의 선구자였다. ‘근대 이성’의 파괴자 니체. 특히 서영문명의 모태가 되는 기독교문명에 사형선고를 내린 장본인였다 (그의 주장을 가리켜 “의도적 무신론”이라 하지 않던가?). 3세대 마르키스트인 하버마스조차도 ‘근대이성’으로부터 일부나마 ‘쓸 만한 것’을 건져볼려고 애 썼는데, 니체에게는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니체는 서양철학사의 큰 바다 위에 떠있는 불침항모였다. 지금도 서양철학은 이 니체라는 거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터키의 오르한 파묵, 그가 올해(2006년)의 노벨 문학상을 탔다지? 수상 이유는, 기독교문화와 이슬람 문화간의 충돌과 융합을 새로이 발견한 공로가 인정됐다지? 그런가? 우선 경쟁자 고은씨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씨를 물리치고 수상한 것에 축하를 보낸다마는, 구미(歐美)에서 기독교문명권에 적당히 아부를 한 파묵씨를 “이쁘게” 봐주고 상을 주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런데 말이야, 구미(歐美) 제군들! 아직도 니체를 비켜갈 수는 없을텐데……어찌 하려는가? 그러나 희망은 있다. 한국의 ‘함석헌’, 일본의 ‘우치무라 간죠’, 러시아 정교회의 ‘베히’ 등이 니체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화담과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 1844-1900 )----분명 그들의 사상은 통하고 있다. 서화담의 도학은 '기일원론(氣一元論)'으로 모든 사물이 기(氣)작용에 의해 생성. 발전한다는 것이었고, 니체도 기(氣)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로니컬하게도, 서경덕은 평생 사색과 연구에 정진하고 후학을 기르면서 57세의 조용한 생을 마감했지만, 니체는 ‘매독’ 에 걸려 강단을 떠나야 했고, 아주 불행한 말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니체는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56세로 고독하고 고통스러웠던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피안> <도덕의 계보> <이 사람을 보라>등 명저들을 남기고 있다. 그가 남긴 저작들은 19세기에 쓰여졌지만, 그의 사상은 그 후 '전투적 휴머니스트'들에게 계승되며 끊임없이 읽히고 있다.
朴淵瀑布
니체하우스 / 독일 작센안할트주 나움부르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