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람의 아들` 이문열, 왜 저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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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요즘 소설가 이문열을 보면서 명망있는 작가가 왜 저리도 황폐한 발언을 거듭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 만약 이문열의 초기 소설들을 읽은 독자라면 그런 의문을 더욱 강하게 가질 터이다. 그의 초기 소설들은 매우 진지하거나 서정적이다.
웬만한 독자라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나 <젊은 날의 초상>쯤은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소설들은 작가가 가난한 문학청년이었을 때에 쓴 것이라고 한다. 이문열의 회상에 의하면 그는 청년 시절 너무도 가난해 신혼여행조차도 제대로 다녀오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소설가라고 하면 '선비'나 '지사'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소설가는 예술가에 속한다. 그런데 토마스 만은 "예술가란 본래부터 윤리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심미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고 그의 기본 충동은 미덕이 아니라 유희"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이문열의 발언이 꼭 이상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보다 시민사회가 일찍 정착된 서구에서는 이문열 류의 문인이 이따금 나오곤 한다. 요컨대 서양에서는 사회 문제와 관련해서 심한 정신분열을 보인 예술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신분열 예술가, 서양에는 적지 않다
노르웨이의 소설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크누트 함순은 자유주의를 혐오한 나머지 철저히 독일적인 것을 신봉하다가 히틀러가 나타나자 나치에 열렬히 동조함으로써 국가의 배신자가 되었다. 미국의 전위적인 서정시인이었던 에즈라 파운드 역시 파시즘에 열광하여 2차대전 중에 격렬한 정치활동을 펼침으로써 조국을 배신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예술가가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성을 띠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견해도 있지만, 예술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들의 사회 참여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어떻게' 참여했느냐에 따라 매겨진다.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사회 참여 때문에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고통스럽게 침해받은 경우는 좌익 예술가보다는 우익 쪽이 단연 많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이문열이 보이고 있는 사회 참여 방법론은 심각할 정도로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의병이란 것은 국가가 적의 침입에 직면했을 때뿐만이 아니라 내란에 처해 있을 때도 일어나는 법"이라거나 "이제 촛불집회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이 일어나야 할 때"라는 발언은 의병 활동으로 이 나라를 목숨걸고 지킨 조상을 왜곡하고 모욕하는 것이다.
또한, 이문열의 발언은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보수 우익 세력을 충동질하여 시민 사회를 이간, 대립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는 촛불집회를 '내란'이라고 규정했는데 정작 그의 발언이야말로 내란을 선동하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촛불집회를 내란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정신이라면, 3·1운동이나 6·10만세운동 또는 5·18광주항쟁 등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이런 점에서 그의 발언은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면서 나치를 선동하고 다녔던 크누트 함순이나 에즈라 파운드의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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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그리고 '홍위병' 발언
한국 사회에는 조중동에 의해 부각된 인물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장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조중동은 한 사람을 부각시키는 데, 속된 말로 사람을 키워주는 데 집요한 능력을 발휘하곤 했다. 그들은 '우리가 그를 키워줘야지'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키워주는데 제가 안 크고 배겨?' 정도의 배짱으로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 부각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문열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작가다. 조중동이 극우화되면서 그는 세 신문의 지원을 받게 된다. 그는 조중동에 <변경> 등의 연재소설과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조중동은 조중동대로 그를 인터뷰할 때 전면을 할애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해 주었다.
이문열이 정치적인 발언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87년 6·10 항쟁 후부터였다. 그는 김영삼·김대중씨의 분열을 심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은 노태우를 찍었다는 식의 발언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 적이 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들어 보수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이루어지자 조중동을 적극 비호하는 칼럼을 <조선일보>에 싣기도 했다.
이문열이 독자와 국민을 가장 당혹하게 만든 것은 '홍위병 발언'이었다. 그는 2001년 <동아일보>에 실은 칼럼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에서 시민단체를 정권의 홍위병들로 규정했다. 아마 이문열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이문열의 최근 발언에는 이전에 있었던 최소한의 수식과 용어에 대한 고민마저 없다. 네티즌들이 기업에 대해 조중동 광고 중단을 요구한 것을 두고 그는 "범죄 행위"라 규정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 운동을 범죄 행위라고 단정하다니?
또한 그는 "촛불 장난을 오래 하면 불에 덴다"고도 했다. 연인원 수백만명이 참여한 촛불집회를 불장난이라고 모욕한 것이다. 불장난을 오래 하면 불에 덴다니, 상투적인 독선은 물론 무지까지 배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에 10% 정도의 오차가 있다고 했다. 더불어 여론조사를 모종의 사회적인 조작이라고 폄훼하기도 했다. 대관절 한국 사회의 여론을 마음대로 조작할 만큼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이 무엇이라는 말인가? 게다가 그의 말대로 10% 정도의 오차가 있다면 12% 또는 7%에 불과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마이너스 수준이거나 잘해야 20%안팎이다.
작가인가 지식인인가, 아니면 파시스트인가
갈수록 사리분별력을 잃어가는 이문열이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도대체 그는 왜 그런 발언들을 마구 해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의 발언은 신념인가 아니면 계산된 의도인가? 물론 신념의 소산일 터이고 자기 깜냥으로는 '우국의 소리'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이문열의 극우 발언은 하시(何時)라도 자기 존재감을 과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종의 '병증'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문열이 충격적인 발언으로 자기와 새로 나온 책을 알리려 한다고 평가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가 자기를 성공시켰던 조중동이 망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문열이 작가인지 지식인인지 아니면 파시스트인지 알고 싶다. 이문열이 과거에는 작가였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는 과격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초한지>라는 신간을 내놓았으니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사회학자 프랭크 퓨레디는 "현대는 지식만 있고 지식인은 없는 사회"라고 말했다. 지식인이란 사회와 정치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그는 대의에 대해 논리 정연한 주장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문열의 발언에는 전문적 식견이 결여되어 있으며 대의는커녕 논리조차도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문열은 파시스트인가? 이 문제에 대해 당장 답하기는 아주 어렵다. 다만, 그가 파시스트가 아니기를 바랄 따름이다. 모름지기 그는 분단의 시대가 낳은 기형적 보수주의자임은 틀림없다.
극우작가 크누트 함순은 훗날 전범 혐의로 감옥으로 향했고 파시스트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전쟁 후 정신병원에 감금되었음을 상기해본다. 이문열의 미래에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작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